본문 바로가기
콘텐츠 훈련소

고려 시대, 아랍과의 교역에도 수학은 왜 발전하지 못했을까? 숨겨진 이야기

by [콘텐츠 마스터] 2025. 3. 20.

고려 시대는 아랍 상인과의 활발한 교역에도 불구하고 수학 분야에서 뚜렷한 발전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역의 성격, 사회적 분위기, 지식 전달의 어려움 등 다양한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봅니다.

 

안녕하세요, 쉬엔샘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수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흥미로운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곤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고려 시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려는 활발한 대외 교류를 펼쳤고, 멀리 아랍 상인들과도 교역하며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수학 분야에서는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까요? 

 

활발했던 고려의 대외 교역, 그 중심에 아랍 상인이 있었다

고려는 개방적인 정책을 펼치며 다양한 나라와 교류했습니다. 특히 송나라와의 교역이 활발했지만, 바닷길을 통해 멀리 아라비아 반도에서 온 상인들도 고려를 찾았습니다. 이들은 고려에 향료, 보석, 약재 등을 가져왔고, 고려의 비단, 도자기, 금 등을 사갔습니다. 국제적인 무역항이었던 예성항은 늘 활기로 넘쳤고, 고려인들은 이들을 통해 서역의 문물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활발한 교역이 곧바로 수학과 같은 고등 학문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왜 고려는 아랍의 발달된 수학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1. 교역 품목의 한계: 실용적인 지식은 오갔을지라도…

고려와 아랍 상인 간의 교역은 주로 상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기본적인 계산 능력이나 단위 환산과 같은 실용적인 수학 지식의 교류는 어느 정도 가능했을지라도, 당시 아랍 세계에서 꽃피웠던 대수학, 천문학과 관련된 복잡하고 추상적인 수학 이론까지 전달되기에는 한계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아랍 상인이 고려의 비단을 특정한 무게 단위로 구매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필요한 수학적 지식은 단순히 곱셈나눗셈, 그리고 양쪽 나라의 무게 단위를 이해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와 같은 기본적인 계산은 이루어졌겠지만, 이차방정식의 해를 구하거나 복잡한 기하학적 증명을 논하는 수준의 지식 교류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2. 불교 중심의 사회 분위기: 수학은 실용 학문 그 이상은 아니었다

고려 사회는 불교가 깊숙이 뿌리내린 사회였습니다. 국가 운영의 이념과 지식인들의 주요 관심사는 불교 경전 연구와 수행, 그리고 문학이나 역사와 같은 학문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유학 또한 중요한 학문이었지만, 송나라 이후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는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수학은 주로 천문학이나 역법 (달력 제작)과 같이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필요한 기술로 여겨졌습니다. 국가의 중요한 행사나 농업에 필요한 정확한 시간을 예측하는 데 수학이 활용되었지만, 순수하게 학문적인 호기심이나 지적 탐구를 위한 수학 연구는 활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당시 아랍 세계에서 수학이 철학, 천문학과 융합되어 고등 학문으로 발전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3. 언어와 문화의 장벽: 지식 전달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언어문화의 차이는 아무리 귀한 지식이라도 쉽게 전달되고 이해되기 어렵게 만드는 강력한 장벽입니다. 아랍어와 한국어는 문법 체계와 어순이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수학적 개념을 표현하는 방식 또한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전문적인 수학 지식을 통역을 통해 정확하게 전달하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외국어로 된 복잡한 수학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아랍의 수학 지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번역할 만한 인력이나 시스템 또한 부족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4. 아랍 수학의 발전 단계: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을까?

이슬람 황금시대 (8세기 ~ 13세기)는 아랍의 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던 시기입니다. 알콰리즈미와 같은 위대한 수학자들이 대수학을 창시하고, '유클리드의 《원론》'을 번역하여 연구했으며, 독자적인 수학적 발견들을 이루어냈습니다. 하지만 고려와 아랍의 교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히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이슬람 황금시대의 후기이거나 그 이후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시 아랍 수학의 발전이 이전만큼 활발하지 않았거나, 교역의 중심이 수학 지식 교류보다는 상품 무역에 더 맞춰져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5. 고려의 자체적인 수학 연구 부족:

물론 고려 시대에도 자체적인 수학 연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역법 연구 등을 통해 기본적인 수학적 지식은 활용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랍 세계와 비교했을 때, 이론 수학이나 고등 수학 분야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미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독자적인 수학적 문제를 탐구하고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려는 지적 노력이 부족했던 사회적 분위기 또한 아랍의 발달된 수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키지 못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결론: 역사 속 교류는 다층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고려아랍의 교역은 분명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가져왔지만, 수학 분야에서는 기대만큼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교역이 부족했던 탓이라기보다는, 교역 품목의 성격, 사회의 주요 관심사, 지식 전달의 어려움, 그리고 각 사회의 수학 발전 단계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역사를 단순히 단편적인 사실들의 나열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함께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볼까요? 고려는 아랍과 교역했지만, 주로 상품 교역이었고, 불교 중심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수학은 실용적인 학문으로만 여겨졌습니다. 언어와 문화 장벽 또한 지식 전달을 어렵게 만들었고, 당시 아랍 수학의 발전 단계 또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고려는 아랍과의 교역에도 불구하고 수학 분야에서 뚜렷한 발전을 이루지 못했던 것입니다.

쉬엔샘의 수학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수학사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